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손내밀어 줄 수 있다고 합니다. 대장암으로 오랜 투병 생활을 해야했던 이해인 수녀님이야 말로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아시는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. 오늘은 이해인 수녀님의 투병 생활 중에 쓰신 "이해인의 햇빛일기" 속에 담아 낸 "환자의 기도"라는 시를 소개해 드립니다. 아픈 와중에도 담담하게 자신의 감정을 아름다운 글로 써내려 간 이해인 수녀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. 세상에 모든 아픈 이들에게 힘이 되길 바랍니다.
환자의 기도 - 이해인
주님
제가 아프기 전에는
당신을 소홀히 하다가
이렇게 환자가 되어서야
열심히 당신을 부르는 제 모습이
비겁하고 부끄럽고 염치없어
숨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
그래도
용서해 주시리라 믿고
더 열심히 당신을 부릅니다
오직 당신께 매달릴 수밖에 없는
저의 나약하고 부서진 모습을
가엾이 여겨주십시오
전에는 느끼지 못했던
두려움, 불안, 고독이
밤낮으로 저를 휘감을 때면
저 자신이 낯설고
세상과 가족과 이웃도 낯설고
그래서 힘이 듭니다
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이 오면
또 하루를 어찌 견디나 힘겨워하고
하루를 마감하는 밤이 되면
잠을 설치며 또 다음 날 걱정하는
어리석은 저에게
다시 감사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
다시 기뻐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
다시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
저 자신을 받아들이는
인내를 주십시오
저를 담당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을
단순한 마음으로 신뢰하고
저를 돌보아주는 보호자인 가족과
간병인들에게
고마워하는 마음을 잃지 않게
해주십시오
그래서 제가 아프기 전보다
더 겸손하게 사랑을 넓혀가는
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
도와주십시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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